[S☆N-fanfic] Summertime 01

※ 열러분,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범인은 골렘 인형입니다. 냐하. ※


『짐을 꾸리도록 해라. 사흘 뒤에 출발할 거다.』

명령이나 다를 바 없는 존의 일방적인 통보에 두 소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짐을 꾸리라고요?』
보다 더 많이 찡그린 쪽의 소년이 반항적으로 눈을 치켜떴다.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주 중인 은행 강도도 이보단 덜 거주지를 옮길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계산이 맞다면 - 딘의 수학 점수가 바닥이라는 점은 별개로 치고 - 윈체스터 가족이 사글세를 다 까먹고 길바닥으로 쫒겨나기까지 아직 2개월 가량의 여유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사흘 뒤? 샘은 탄식했다. 더하기와 빼기의 오류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이건 너무 빨랐다.
평소「최소한 다음 학기가 끝날 때까지 여기서 이사 가지 않게 해주세요」라며 하늘의 반짝이는 별님에게 소원을 빌던 샘은 절박감에 사로잡혀 시선으로 그의 형을 찾았다. 왜냐하면 장남이 약간의 푼돈을 침대 매트리스 아래로 꿍쳐두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발 - 마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호소했다. 지금이야말로 돼지 저금통을 깨부술 시간이야, 형! - 그는 이사 가고 싶지 않았다.

『사이먼이...』
사이먼은 샘이 이곳에서 사귄 단짝 친구의 이름이다. 두 소년 모두 외골수인데다, 누가 뭐래도 고집쟁이이고, 변죽이 들끓었으며, 책이라면 환장했다. 그리고 엄마가 없어 불행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렇게 비슷한 점이 많으면 서로 반발할 것도 같건만, 둘은 찰떡처럼 붙어다녔다. 숙제도 곧잘 같이 했고, 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타고 꽤 멀리까지 놀러나가는 일도 많았다. 게다가 그들은 이번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하여 계획도 짰다. 그중에는 자연사 박물관을 방문하는 일도 있었다. 서른 여덟 살 먹은 사이먼의 삼촌을 보호자로 대동하고 시카고까지 버스를 타고 가자며 틈만 나면 노선표를 들여다보곤 했다. 거사일도 7월 20일로 정해놨다.

『사자 박제가~!!』
마이클 더글러스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고스트 앤 다크니스」개봉 탓일까, 박물관 견학 기대에 부푼 샘은 140명 이상의 철도 인부를 잡아먹은 것으로 알려진 차보의 식인 사자의 박제에 대해 곧잘 떠들곤 했다. 어린애도 아닌데 솜을 넣어 만든 인형에 흥분하는 거냐, 딘이 구박을 해도 샘의 흥분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디즈니랜드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색연필로 달력에 표시를 해두고 비밀스런 미소를 짓곤 했다. 존이 반대를 하면? 아무에게도 말하진 않았지만 그때는 가방 하나 끌어안고 가출을 감행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가출이고 뭐고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버리면 삽시간에 모든게 끝장.

뜬금없이 튀어나온 사자 박제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린 존은 가만히 두 아들을 응시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냐.』
『물론 있고 말고요. 아버지! 저는... 읍!』
저수지에 물이 말라 벼농사가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읍소가 터져나오기 전에 딘은 재빨리 팔을 앞으로 뻗어 동생의 아래턱을 재빨리 움켜잡았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아버지.』
발끈해서 크게 소리를 지르려던 샘은 적잖게 당황한 눈치다. 재갈이 물린 짐승 신세가 된 건 둘째고 딘 가라사대, 아무 문제 없댄다. 화가 잔뜩 치밀어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쌍심지를 곤두세웠다. 그래봤자 딘은 동생을 쉽게 풀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팔꿈치를 세게 꼬집어도 요지부동. 발등을 밟아도 요지부동. 붙잡힌 턱이 쓰라렸다.
『더 하실 말씀이 없다면 방으로 돌아가도 될까요.』
앞에서는 아닌 척하고 뒤로 엎치락뒤치락하는 두 아이들을 바라보는 존의 표정은 대단히 복잡했다.

거의 끌려오다시피 해서 방으로 돌아온 샘은 결국 계집애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난 이사 안 가! 못 가!』
꺼이꺼이 흐느끼며 침대를 향해 꺽다리 몸을 던졌다.
『딘은 바보!』
분에 넘쳐 주먹으로 베개를 마구 때렸다.
그 나이에 으앙 소리를 내어 울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무릇 남자라면 울음이 나와도 꾹 참아야 하는 법 아닌가. 그런데도 샘은 봇물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눈물을 쏟아내며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엉망진창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코를 들이마시면서 동시에 딸꾹질도 했다. 불가항력적으로 호흡이 짧게 끊어져 얼굴이 새빨갛게 되었다. 그런 주제에 욕이란 욕은 죄다 주워 삼켰다.
『문어 대가리! 돼지 방구! 부스럼 땜빵!』
흑백 텔레비전이 처음 나왔을 적에나 유행했을 욕말에 딘은 신음했다.
마지막으로는 구겨진 버스 노선표가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날았다.

『샘. 그만해.』
우는 동생을 측은히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모든게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있다. 애시당초 박물관 견학은 무리한 계획이다. 권총 한 번 잡아보지 않았을 평범한 사람에게 존이 샘의 안전을 위임할 리 없으니까. 그걸 모르지 않으면서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샘도 어지간히 징그럽다.
딘은 오른발을 사용해 구겨진 버스 노선표를 구석으로 걷어찼다.
『아빠가 뭐라고 하기 전에 그만 울어.』
막상 뱉어놓고 보니 아차 싶었다. 샘은 지금 반항기다. 존이 시끄럽다고 신경질적으로 문을 노크하면 동생은 여봐라 해가며 더욱 크게 목 놓아 울어버릴 거다. 그래서 서둘러 말을 고쳤다.
『이사 가는 곳에서 새 친구를 또 사귀면 되잖니.』
순전히 입에 발린 말이다. 어울리지도 않은 땡땡이무늬 넥타이를 착용한 사장에게 센스가 멋지다고 칭찬하는 것과 같다.
『아니면 나랑 같이 박물관에 갈 수도 있다고.』
동생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대하며 지키지도 않을 공수표를 남발했다.

계속해서 흐느껴 울던 샘은 만사 포기했다는 투로 질끈 눈을 감았다.
『새미?』
『됐어.』
『진짜야, 형이 약속할게. 그 유명한 살인마 사자 앞에서 둘이서 사진 찍자.』
『필요 없어.』
다 끝났다. 몽땅 망쳤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올해 여름 역시.
등 돌리고 누운 동생은 피곤했던지 그대로 잠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제기랄. 사이먼에게 뭐라고 말을 하지...』
훌쩍이는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끼며 다시 거실로 돌아온 딘은 이번에는 할 말이 잔뜩 있음에도 이마에 굵은 주름살을 만드는 것밖엔 재주가 없는 사내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인생이 왜 이렇게 거지 같을까. 딘은 순간적으로 뒤돌아 달아나고픈 충동과 싸웠다.
『음.』
벽이 얇은 집이다. 동생이 꺼이꺼이 흐느끼던 소리는 고스란히 거실까지 전해졌을 거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하시라니까요 -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이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하려면 신문지에서 오려낸 5% 할인쿠폰을 쥐고 수퍼마켓에 가는 시늉이라도 해야할 것이다. 딘은 냉장고를 열어 콜라를 꺼냈다.
존은 다시 한 번 더 굵게 음, 목을 울렸다.
『맥주는 떨어졌어요. 아버지도 콜라 드실래요?』
『아니다.』
『좀 있다가 팬 케이크를 만들게요. 아니면 인스턴트 스파게티가 남았는데...』
『괜찮다.』
딘은 속으로 외쳤다.
괜찮지 않아요, 아버지. 하나도 괜찮지가 않다니까요!!
하지만 일부러 멍청한 표정을 지은 장남은 손에 쥐고 있던 콜라를 연거푸 홀짝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저번에 웨어울프를 쫓을 적에 샘이랑 저랑 밤낮으로 엄청난 양의 은탄환을 만들었었죠. 집세가 모자랄 법도 하네요. 게다가 지랄맞은 은탄환이라는 놈은 한 번 사용하면 재활용도 되지 않고... 아, 깜빡 잊고 있었다. 그때 현금이 없어 카드로 긁었잖아요. 슬슬 청구서가 날아오면서 미스터 블로비치가 가짜라는게 들통날 것도 같은데.』
존은 위장이 쓰리다는 투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들통났다.』
과연... 그게 이 마을에서 떠야 하는 진짜 이유군. 딘은 씁쓸하게 웃었다.

신용카드 사기는 늘 뒷맛이 구리다. 싸구려 술집에서 사기 포커를 치다 조무래기 건달에게 들키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 주먹으로 뒈지게 얻어맞는 일로는 절대로 안 끝난다. 일단 쫓아오는 상대가 완전히 틀린 것이다. 뱃지를 꺼낸 연방요원이 대문을 탕탕 치는 걸 상상한 딘은 마시다 남은 음료를 개수대 위로 남김없이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사흘 뒤에나 여기서 빠져나가면 조금 위험한 거 아녜요? 아버지.』
『끄음.』
『어차피 샘은 사이먼에게 작별 인사따윈 하지 않을 거예요. 녀석은 늘 그래왔으니까. 사흘씩이나 죽치고 있을 필요는 없어요.』
예의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던 존은 이번엔 장남의 얼굴을 지긋이 응시하기 시작했다.
『너는 어떠냐.』
그건 딘으로선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었다.
『예?』
『줄곧 만나던 여자친구가 있잖니. 이 애비는 그 여자애 이름은 잘 모르겠다만... 베키?』
서둘러 손사레를 쳤다.
『그냥 재미로 가끔 만나던 거예요. 친구도 아니니까 작별인사 따위 안 해도 괜찮아요.』
『음...』
『그보다 케일럽 아저씨에게 전화라도 해야겠어요. 지하실에 있는 몇몇 잡동사니는 집주인이 발견하면 골치가 아파지는 종류니까 사전에 완벽하게 정리를 해둬야 할 거예요. 저번에 산 만도 같은 건 임팔라 트렁크에는 안 들어갈 거구요.』
『자루와 날을 분리하면 된다.』
『떼어낸 날을 다시 끼우는게 골치 아프니까 그러죠.』
『연습하면 된다.』
『그럼 만도는 챙겨서 가져가고 블릿 프레스기 처리는 케일럽 아저씨에게 맡기죠.』
모처럼 중고로 산 식탁 세트와 샘이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소설책의 처리를 제일 먼저 걱정했으면서도 딘은 그 점을 내색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런 건 끌어안고 가져갈 수 없다. 식탁은 임팔라 트렁크에 당연히 안 들어간다. 책? 그런 걸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 최소한의 옷가지와 칫솔 같은 생필품만 챙겨도 자동차에 엉덩이를 꾸겨넣을 공간이 부족해진다. 더욱이 존은 무기에 관하여선 타협을 하지 않았다. 총 한 자루를 더 챙길 수 있다면 신던 구두를 유리창 밖으로 던지고도 남는 위인이었다. 그러니 고집쟁이 동생이 책을 가져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면 일은 엄청 복잡해질 것이다.

『잠시 밖에 있을게요.』
『어디 나가느냐.』
『담배 좀 피우려구요.』
숨이 턱턱 막히는 건 찌는 듯한 더위 탓이라 여기면서 현관으로 나섰다.
그래봤자 여름은 이제 막 시작이어서 그늘에 몸을 숨겨봤자 짜증이 가라앉지는 않았다.

Posted by 미야

2009/07/07 11:00 2009/07/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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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J 2009/07/08 14:53 # M/D Reply Permalink

    구상하신다던 소설이군요,
    틴체스터는 어쩐지 우울하네요-사냥에만 메달리는 아버지와 평범함을 꿈꾸는 동생사이에서 딘만 죽어나는 일이 많아서일까요?-그럴 때 보면 파파존 미워!를 막 외치고 싶은데-지난번에 하일라이트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빗자루로 얻어맞는 존이라고 하셨던가?...ㅎㅎㅎ 형제들의 십대는 조금 우울하지만, 그런 색다른 재미를 주신다면 두 손들고 환영입니다. 뭐-미야님 소설이라면 언제나 그렇지만..ㄲㄲㄲㄲ
    암튼,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2. 나마리에 2009/07/09 09:04 # M/D Reply Permalink

    와, 자식 앞에서도 서툰 남자 존이군요. ㅋㅋ 존이 무척 귀여운데요? ㅋㅋㅋ
    사춘기 소년 샘도 귀엽구. 아버지가 말이 없으니 장남이 말이 많군요. 쯔쯧 불쌍해요. ㅋㅋㅋㅋㅋㅋ

  3. ameretat 2009/07/09 20:32 # M/D Reply Permalink

    윈체스터 형제의 십대라.. 그저 아이고 소리만.. 우울하고 어둡고 위험한 나날들이라고 생각되니 안쓰럽네요. 특히 파파존과 샘 사이에서 끼어있는 딘이 애처로워요ㅠㅠ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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