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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가 사람과 거의 흡사하게 표정을 지을 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고물딱지 저사양일수록 그것들은 가면처럼 무표정하거나, 혹은 생글생글 웃기만 한다.
기물파손 증거물 파일이 올라왔을 적에 앤더슨 경위는 무차별적인 폭행에 산산조각 났으면서도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안드로이드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인간들끼리 핫도그 가판대에서 마스터드 소스를 두고 시비가 붙었는데 그들은 엉뚱하게도 백화점으로 화분을 배달 중인 생판 모르는 안드로이드를 도로 한 가운데로 밀어버렸다. 트럭에 치어 얼굴 절반이 깨져나갔음에도 안드로이드는 틀로 찍어낸 미소를 지었고, 앤더슨 경위는 배트맨 만화에 나오는 조커가 연상된다며 손사래를 쳤었다.

그리고 오늘.
사이버라이프의 기술발전은 칭찬할 만하지만 안드로이드의 낯짝은 여전히 별로라고 답 하련다.
어째서 트렁크 팬티 차림새로 밖에 쓰레기 버리러 나온 인간인양 날 쳐다보는 건데? 개밥 주러 집에 가야 한다는 게 그렇게 못 마땅해? 아니 그럼 우리 개를 굶기라는 거야?
제임스 무어의 반응도 거기서 거기였다. 그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 한참 고민하며 입술을 옴짝달싹하더니, 벌레 물린 이마가 가렵다며 긁었다. 그러더니 「아아, 술 냄새가 났었지.」 이 한마디를 내뱉고 모든 근심이 해소되었다며 맥을 탁 놓았다.

『뭐야, 지금 그 반응은! 어, 어! 너희들!』
앤더슨 경위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래, 술 좀 먹었다. 하지만 정신은 말짱하거든?!
『애초부터 사복 경찰관이 뱃지 하나만 들고 거리를 헤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뭐, 아무래도 알코올이라는 게 사람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긴 하죠.』
『이것들아. 내 귀에 다 들리거든?!』
『그나마 다행인 건 키우던 개를 돌보기 위해 귀가할 즈음엔 취기가 가실 거라는 거죠. 그럼 이 새벽에 길바닥에서 총으로 사람 쏘고 돌아다녔다는 건 아마 다 잊어버릴 겁니다.』
『내가 아니고 네가 쐈잖아! 안드로이드가 사람을 이렇게 모함해도 되는 거야?!』
『아직은 술기운이 가시질 않아 저렇게 주장하고 있지만... 아침이면 괜찮아질 겁니다.』
『사기꾼!』
『뭐, 숙취로 인한 두통은 어쩔 수 없겠지만요.』

분을 표현하며 아우성치는 경위는 나 몰라라 하며 조지가 제임스의 팔을 끌어당겼다.
손가락을 입술로 가져가는 건 조용히 하라는 신호, 그리고 시야에서 벗어난 한 장소를 향해 짐짓 눈짓했다.
부분적으로 꺼진 조명 탓에 사물이 흐릿했다. 허리 높이의 직사각형 구조물은 아마도 화단으로 꾸며졌을 조형 장식물 같았고, 그 옆에는 휴게 벤치가 있었다. 조지가 소리를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여서 아래, 라고 말했다. 그리고 엄지와 소지를 세우고 나머지 손가락 셋을 접었다. 수화로 여덟이라는 의미였는데 불행하게도 제임스는 수화를 전혀 몰랐다.

제임스가 목을 빼어 그쪽을 쳐다보려 하자 다시 팔을 잡아당겼다. 자극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안드로이드입니까.』
『궁금한가요. 그럼 가서 직접 모자를 벗겨보고 관자놀이에 LED 링이 붙어있는지 확인해보죠.』
『어... 그러지 않는 게.』
당황하여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그러다가 제임스는 짓궂게 일그러진 입매를 보고 그가 농을 했음을 깨달았다. 적절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농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상대는 안드로이드다. 땅콩버터는 버터플라이(* 헤엄을 치는 방식으로 접영). 이게 안드로이드식 농담이다.

『괜찮습니다. 일부러 먼저 시비를 걸지 않는 이상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애초에 저들에게 공격의사가 있었으면 우린 진작부터 얻어맞았죠.』
조지는 그렇게 소곤거리며 제임스의 등을 밀었다.

모르긴 몰라도 개표구 내부의 온도는 바깥 온도와 거의 마찬가지였다. 안드로이드에겐 아무 상관이 없지만 인간인 제임스에겐 썩 좋지 않았다.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적당한 장소를 찾거나, 아니면 차라리 밖으로 다시 나가 계속 걷는 편이 나았다.
조지는 첫 번째를 선택해서 화장실로 향했다. 낮은 온도로 배관이 얼면 골치가 아파지기에 어느 건물이든 화장실만큼은 단열처리를 잘 해두는 편이다. 선객이 없으면 다행이고, 선객이 없어도 제임스를 그리로 밀어 넣을 생각이었다. 모양새가 빠져서 그렇지 뚜껑을 내린 변기는 의자로 쓸 수도 있다.
조지는 얌전히 따라오는 제임스를 흘끔 쳐다봤다.
본인은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이라 착각하는 눈치인데 미열이 나고 있다. 많이 놀라기도 했고, 피로가 누적되어 몸이 오작동을 일으켰다.

코끝이 약간 빨갛게 변한 제임스가 돌연 어깨를 으쓱였다.
『실수로 유리컵을 떨어뜨렸음에도 금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제 조금은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뭐라고요?』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다. 툭 한마디 내뱉어 상대방을 당황시키고는 다시 자기만의 생각에 빠졌다. 어딘지 멍한 표정이었고, 솔직히 그런 그는 대단히 멍청하고 못생겨 보였다.
『유리컵이요?』
『아침에 일어나 키우는 개의 밥을 챙겨주고 밖으로 나왔어도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참지 못한 거겠죠.』
『앤더슨 경위 이야기였습니까?』
『아뇨. 제 이야깁니다.』
『개를 키우고 있는 건 제임스가 아니고 앤더슨 경위잖습니까.』
『유리컵은 제 것입니다만.』
대화가 전혀 되질 않는다. 캐머런이 왜 그토록 질색했는지 조금은 알 거 같았다.
그런데도 본인은 진지하다. 더 할 나위 없이 진지해서 이해를 못하는 게 듣는 사람 잘못 같았다.

『징조는 어떤 일이 생기기 이전에 미리 보이는 조짐입니다.』
『예?』
『손가락이 닿기도 전에 유리컵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유리컵은 멀쩡했죠.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유리컵이 떨어지려면 그 전에 제 손에 닿아야 했고, 그리고 바닥으로 떨어진 컵은 깨졌어야 했죠.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최 줄거리를 따라갈 수 없다. 제임스의 말은 조각조각 난 상태였고, 문제는 본인은 그걸 인지하지 못했다는 거다. 머릿속에서 어떠한 줄거리로 생각이 이어지고 있는데 유리컵이 떨어졌다고 하더니 갑자기 앤더슨 경위의 강아지 밥 주기로 튄다. 마무리는 징조다.
퍼즐의 조각을 모두 제자리에 가져다 붙이면 어떠한 그림이 보이긴 할 것이다. 그러나 제임스가 묘사하는 건 손톱 크기의 조각에 불과하다. 따라서 지금의 시점에서 완성된 퍼즐의 그림이 건물인지, 전원풍경인지, 고양이 사진인지 짐작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전에 제임스 본인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앤더슨 경위의 이야기인지조차 구분이 안 갔다.
여기서 제일 심각한 건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이해시키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제임스에게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거다.

화장실 문을 열었다.
『......』
선객이 있었다. 공용 이용시설이니 그건 상관이 없는데.
조지는 누가 실수한 것인지를 판단하고자 안내 표지판부터 확인했다.
『남자 화장실 맞는데.』
안에 여자가 있었다.
구부러진 금속조각을 손에 쥐고, 무엇에 홀린 듯 벽면에 글자를 새겨 넣느라 정신이 팔린.
인기척을 느끼고 여자가 출입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안드로이드인 조지의 LED 링을 알아채곤 눈에 띄게 안도했고, 따라오던 제임스를 보고는 돌변하여 크게 분노했다.

Posted by 미야

2020/07/09 12:05 2020/07/0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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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야 2020/07/10 08:45 # M/D Reply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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