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펌은 사절합니다. 자급자족 습작입니다. 일부 내용이 계속 수정되고 있습니다. ※


맞은 곳이 퉁퉁 부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마음이 편했다. 앞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면 감히 이족보행을 하는 넝마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주변 시선이 부담스러워 견디지 못했을 거다.
다만 눈과 달리 귀는 제대로 열려진 상태였기에 숨을 훅 소리 나게 들이마시거나, 혀를 차거나, 숙덕거리는 기척 전부를 고스란히 느껴야만 했다.
「세상에, 핏자국이라도 지우고 나올 것이지.」
「와... 면신인가. 멋지게 얻어맞았군.」
「뉘집 아들이지? 응? 뭐라고. 변방인? 과연, 그랬군.」
그중에는 지나쳤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소수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다수가 면신 관습을 두둔하면 두둔했지 내 처지가 가엾다며 동정심을 드러낸 자는 없었다는 점이다. 반대로 웃는 자는 있었다. 내 생각엔 재밌다 여길 요소가 눈꼽만치도 없는데 분명히 숨 죽여 낄낄거렸다.

모르겠다. 기분 탓은 아닌데. 어쩐지 기분이 나빠져 웃음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거기에는 사람이 없었다.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자 길게 늘어진 나무 그림자만 보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현선당 돌담 아래에서 느낀 수상쩍은 기척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만... 설마, 그때부터 내 뒤를 계속해서 졸졸 따라왔다면 악몽이 따로 없게 된다.
「가뜩이나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넌더리를 내며 작은 조약돌을 주워 나무 그림자를 향해 던졌다.
하지만 팔에 힘이 없어서 그런지 내가 던진 돌은 제대로 날아가지도 못하고 절반쯤 이르러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그러자 웃는 소리가 아까보다 더 커졌다.
「그려, 맘대로 웃어라. 웃으면 복이 온다고 그러더라.」
드러내어 해코지를 하지는 않으니 당분간 내버려둬도 좋겠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오늘의 일터, 마굿간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굿간 앞에는 이미 선객이 있어 두 명의 아이가 훌쩍거리며 구석에 앉아 있었다. 일하는 하수들과 다르게 연두색과 분홍 같은 고운 빛깔로 염색을 한 비싼 옷을 입고 있기에 나처럼 면신을 당한 아이들인가 보다 추측하고 가볍게 목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어랍쇼, 내 얼굴을 보자마자 대낮에 몽둥이에 맞아 죽은 귀신이 나왔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왜 울어, 왜!』
『하지만 얼굴이 귀신 같은 걸.』
『그래, 멋지게 알록달록하지. 하지만 죽은 건 아니라고? 그러니 멋대로 산 사람을 귀신으로 만들지 말아줘.』
그렇게 부탁했건만 아이들은 울음을 그치기는커녕 반대로 더 통곡하기 시작했다.
아마 내 모습을 통해 자신들의 처지가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았던 것 같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더니「이러려고 여기에 온게 아닌데」한탄했다. 집을 떠나온 처지가 서글프고, 구박받는 신세가 속상하고, 얻어맞는게 무서우니 눈물이 나올 법도 하다. 녀석은「어머니, 보고 싶어요.」라고도 했다. 소매가 수분으로 푹 젖어 밝은 연두색 옷감은 어느새 짙은 초록으로 바뀌었다.

『울지 마.』
내가 듣기에도 말하는 내 목소리는 쌀쌀맞았다.
『울면 체력이 떨어져.』
상냥하게 달래는 위로의 한 마디를 내심 기대했던 아이들은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그리 말하면 무익한 사탕발림이 될 터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만히 기다리면 저절로 해결된다고? 누군가 나서서 구원해줄 거라고? 도와줘? 누가. 황충이 소중한 벼를 먹어치우고 있는데 저절로 재앙이 사라지길 기다리겠다고? 실제로 하는 일도 없으면서 막연히 사당에 들어가 조상신에게 기도하는 부류는 딱 질색이다. 들판에 큰 불을 놓아 차라리 같이 죽자 이러는 것도 곤란하긴 하지만 - 낙망한 채 신세한탄이나 하고 있는 것보다는 불을 놓는 편이 낫다. 이런 식으로 주저앉아 우는 건 쓸데없다.

나는 아이들을 그대로 지나쳐 송주의 소유인 말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찾았다.
『진짜로... 할 거야?』
눈물을 글썽대고 있던 아이가「더럽잖아」하소연했다.
『더러우니까 치우는 거지. 그게 청소잖아.』
『그래도!』
『하겠다고 했으면 해야지.』
싫다면 처음부터 하겠다는 말을 꺼내지 말았어야 한다.

명문가 소유임을 증빙하는 마사의 명패를 하나씩 살펴 어렵게 세 필마를 찾았다.
말들은 자기 주인을 닮아 인상이 고약했다. 털이 짙은 갈색이었던 놈은 앞다리로 바닥을 긁으며 두 귀를 뒤로 바짝 젖혔는데 가까이 가면 물어뜯겠다며 이빨로 딱딱 소리도 냈다. 성격이 그 지경인지라 바닥에 흘린 배설물도 일부러 밟아서 마구 짓이겨 놨다. 거세한 말 주제에 하는 짓이 지랄 맞았다.
『......』
어떻게 나오려나 가만히 눈을 마주치자 이번엔 흥분하여 머리를 홰홰 저었다.
저런 놈은 낯선 사람이 접근하면 십중팔구 뒷발차기를 한다. 그걸 모르고 무작정 마사 안으로 들어갔다간 벽으로 튕겨나가 뼈가 부러진다. 염소에게 차여도 몇 일은 끙끙거려야 하는데 하물며 상대는 몸집이 큰 숫말이다. 나처럼 작은 아이는 자칫하면 목숨도 위태롭다.
「청소 이전에 저 포악한 놈을 마사에서 끄집어 내는 일이 급선무겠군.」
다시 한 번 부운 눈을 억지로 치켜뜨고 말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리고 옆에선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소곤거렸다.
『듣자하니 말고기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지경으로 기가 막히다던데.』
바닥을 부산하게 긁어대던 앞다리의 움직임이 그 즉시 따악 멈췄다.
영악한 것.
나는 혀를 안쪽으로만 부드럽게 굴려 다시 한 번 말했다.
『특히 소금에 절인 육회가 별미라지?』
흰자위가 잔뜩 드러난 말의 눈이 이렇게 묻고 있었다.「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요?!」

『하하하, 크하, 으하하, 아이고 나 죽네~』
덧붙여 설명하자면 지금 내 뒤에서 배를 잡고 깔깔거리고 웃느라 숨 넘어가게 생긴 이는 예의 울보가 아니다. 그보다 나이가 곱절은 많고, 이름으로 부르기도 송구하여「자손」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자다. 근접하기도 어려운 귀인이 왜 이런 누추한 곳을 혼자의 몸으로 어슬렁대는지 이해가 안 갔다. 것보다 이렇게나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나는 눈치를 전혀 못 챘다. 발자국 소리 같은 거, 하나도 안 났다.
『끝내준다. 완전 악랄한 녀석이야. 그게 말 앞에서 할 얘기냐. 소금에 절인 육회가 별미라니! 으하하하! 게다가 쫄았어! 말이 어린애 농담에 쫄았다고~!! 와하하!』
『자손...』
『아이고, 배야~!! 나 미친다, 미쳐.』
『그만 웃으세요.』
저 남자의 신분을 생각하자면 돌아서서 최소한 반절이라도 올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분이 단단히 잡친 나는 예절이고 나발이고 생략한 채 솔과 주걱 따위의 도구를 찾아 안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배.야?』
나로부터 무시를 당했다고 차마 생각을 못한 자손은 목을 길게 빼고 그런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Posted by 미야

2015/06/03 14:56 2015/06/03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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