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직접 버들고리짝을 옮겨준 것에 대해선 매우 고맙고 송구하다 생각한다.
기꺼이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도 장도리를 들고 창문을 막은 널빤지 앞을 서성거리는 건 앞의 것과 얘기가 틀리지.」
귀하게 자란 소년은 목수들의 밥줄 도구인 장도리가 신기한 눈치였다. 그 생김새를 요모조모 살펴보더니 노루발처럼 갈라진 부분을 엄지로 튕겼다. 단단한 철의 형태를 인식하자 다음으로는 검을 다루는 요령으로(망할) 자루 끝부분을 잡고 좌우로 허공 베기를 했다.
흉기처럼 붕붕 소리를 내는 장도리의 운동 궤적을 눈으로 쫓으며 서둘러 그를 만류했다.
『그건 그렇게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야. 못 뽑기는 내가 할테니... 으악!』
못을 뽑는 일은 힘으로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아이는 이해 못했다. 지렛대의 원리를 미리 설명해줬어야 했던 걸까, 소년은 널빤지를 박살내면 된다는 단순한 목표의식 아래서 정 가운데를 조준해 장도리를 휘둘렀다. 아니, 휘둘렀다기보다는 기합으로 찍어 넘겼다.

그려, 내 이럴 줄 알았어.
가늘게 새어나온 눈물을 닦고 - 슬퍼서가 아니라 숨을 죽여 웃다보니 눈물이 나왔다 - 튕겨 나온 나무 파편과 근사하게 짜부라진 창틀에 삼가 묵념하였다. 장도리로 찍어 널빤지를 참살한 린청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 눈치다. 장렬하게 사망한 널빤지는 저 혼자 죽기는 억울하다며 동료를 데리고 먼 저승길을 떠났다. 창틀만 박살난게 아니다. 툭, 하고 깨진 벽돌 조각이 아래로 굴렀다. 게다가 그 파편 덩어리는 그 크기가 결코 작지 않았다.

으허어억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이윽고 파랗게 질려 내 눈치를 살폈다.
『있잖아, 안즈.』
『말해보시게.』
『네가 허락한다면 나는「내 방을 같이 써도 좋아」라고 말하겠어. 하지만 그게 네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거라면 나는 침묵할 거야.』
『너는 창문을 망가뜨린 사과를 참으로 별난 방식으로 하는구먼. 미안하다는 말은 됐고, 장도리는 그만 내려놔. 한 번 더 휘둘렀다간 벽 자체가 무너지겠다.』
『잘못했어.』
『사과는 됐다니까.』

평소와 마찬가지인 내 모습에 크게 안도해하며 소년이 다시 질문했다.
『저어, 그런데 제안은...?』
『마음을 써줘서 고마워, 린청. 하지만 난 괜찮아.』
『역시 사양하는구나.』
녀석은 내가 긍지 높은 귀족으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워 타인의 도움을 거절하는 거라 착각했다.
그러나 여기서의 문제는 안즈의 성별이 여자이고 그가 남자라는 거였다. 머지않아 육신의 2차 성징이 시작될 터인데 머리냄새가 진해지면서 나도 가슴이 붕긋하게 나올 것이고, 그 또한 울대뼈가 도드라지고 고환이 커질 것이다. 이후로는 민망한 일들의 연속이다. 솔직히 말해보랴, 감당할 용기가 없었다.

아니, 이게 아니지. 그렇게나 한참 나중 일을 걱정할게 아니라.
살이 없어 안으로 움푹 꺼진 가슴을 쓰다듬다 말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린청, 나는 여자야.』
『그래, 이것은 빗자루다.』
그러니까 왜! 어째서! 무슨 까닭으로! 아무도 귀 기울여 내 말을 듣질 않아!
원인 제공자니까 자신이 바닥을 치우겠다며 직접 빗자루를 쥔 린청은 머리털 나고 생전 처음 해보는 청소에 진땀을 빼는 중이었다. 살인 곰을 잡으라면 잡겠지만 빗자루로 바닥을 쓰는 건 은근 어렵다?
바닥에 떨어진 벽돌 조각의 위치를 잘 봐두고 신중한 자세로 비로 밀어냈더니 이 발칙한 것들이 한 곳으로 모이지 않고 사방으로 굴러갔다. 당황하여 빗자루로 찍어 눌러 도망가는 움직임을 급히 차단했는데 아뿔싸, 기세 좋게 휘두른 빗자루의 움직임에 바람을 타고 먼지가 일어나 그만 재채기가 터졌다.
『린청, 나는 여자라니까.』
버럭 대마왕은 재채기 탓에 흘러나온 콧물을 닦다 말고 짜증을 냈다.
『알았다니까! 인정할게! 이건 분명 빗자루 질이 아니다! 하지만 노력하고 있다고. 맙소사, 청소라는 건 보기와는 달리 쉬운 일이 아니군. 이런 젠장!』
그러니까 녀석은「네가 지금 하고 있는 짓거리는 청소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런 건 감히 빗자루 질이라 할 수 없다. 양심도 없는 놈!」라는 의미로 남성인 내가 비꼬아 여자라고 말했다 여기는 듯했다.

똑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하여 말하는 건 고래부터 있어 온 저주의 행위.
먼지를 들이켜서 그런지 나 또한 콜록 기침이 나왔다.
『부탁이니 창문이나 열어. 아유, 먼지...』
「나는 여자다」세 번 말하기는 그런 까닭으로 포기다.

『있잖아, 안즈.』
『응.』
『본가에서도 대략 이런 식이었어? 항상 혼자서... 그러니까. 음.』
탁자 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번갈아 흔들어대던 나는 간장에서 소금기가 전부 빠져나간 말간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것이 대답이 되었을까, 소년은 나로부터 짐짓 시선을 돌렸다.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그는 햇빛 아래서 너울 춤추는 먼지들의 움직임을 구경했다.
나는 티끌을 잔뜩 뒤집어 쓴 그의 긴 머리카락을 힐끗 쳐다보았다.

망할 빗자루를 손에 쥔 채 의자에 앉은 소년은 번민에 휩싸여 엉덩이의 무게 중심을 좌우로 왔다갔다 이동시켰다.
다리가 부실하여 사람이 앉으면 원래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던 의자다.
여기에 산만한 동작까지 더해지자 의자는 마치 고깃간 저울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암호처럼 모호하고 그 뜻이 명확하지 않았던 질문도 덩달아 흐지부지 사라졌다.

기지개를 켜는 요령으로 상체를 뒤로 젖힌 나는 무거워진 공기에 질색하여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뭐랄까... 익숙해져 있으니까.』
『하지만 익숙해져서 될게 있고 익숙해지면 안 되는 것이 있어, 안즈.』
소년의 투명하고도 맑은 눈동자가 온전히 나에게로 향했다.
순간 나는 그 반듯하고 순진한 눈동자가 미워지려 했다.
『너는 모른다. 익숙해지지 않으면 더 괴로워져.』
그렇다고 익숙해지면 과연 편안해지던가. 나는 슬그머니 입술을 깨물었다.
이 세상에 오로지 나 혼자서.
이것은 이형(異形)에게로 내려진 형벌, 섭리를 거슬렀으니 그 대가는 치러야겠지.

『청소나 계속 하자.』
어쩐지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소년으로부터 등을 돌리며 탁자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Posted by 미야

2015/05/28 11:25 2015/05/2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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