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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제목도 없는 글을 이렇게 연달아 쓰고 있는 건지... ※


어지럽다 생각했는데 거울을 보니 뺨이 빨갛다. 이마를 만지니까 뜨겁다.
『딘. 나, 아파.』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지면 범인은「까마귀」다.
눈을 아래로 내리깐 딘은 어찌할 바 모르겠다며 양말을 신지 않은 오른발, 왼발을 번갈아 옴죽거렸다.

『젠장! 해열제가 떨어졌잖아!』
부시럭거리며 가방을 한참 뒤지던 형이 듣기 민망한 욕설을 퍼부어댔다.
버스를 기다리면 버스가 오지 않는다,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날엔 비가 온다, 중요한 데이트 약속이 있는 날엔 꼭 구멍이 난 양말을 신게 된다 -『부탁할게. 이렇게 눈물로 호소할테니 그놈의 빌어먹을 양말 이야긴 제발 그만해~!!』형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더 올라갔다 -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거다. 하여간 정작 필요해서 찾으면 꼭 제자리에 없다. 그러니까 몸이 아프면 먹어야 할 약은 수중에 없기 마련. 난 그럴 거라 이미 예상했고, 그렇기에 차가운 물수건을 찾아 엉금엉금 기었다.

『귀족 탐정 다아시 경이 고개를 숙일만큼 정말 논리적인 추론이구나, 동생아.』
내 증상이 꽤 심각하다는 걸 한 바퀴 돌려 말한 딘은 이번에는 지갑과 자동차 열쇠를 찾기 위해 테이블을 뒤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와르르 와르르 각이 진 쇠구슬이 철판 위를 왔다갔다 하는 소음이 들려왔다. 피자 포장지와 맥주캔이 잡지 무더기와 서로 뒤엉켜 있다. 이중에서 필요한 것만 딱 집어 골라내는 일은 쉽지가 않을 터, 성격이 급한 딘은 한꺼번에 잡지를 쓸어내렸고 그 거친 손동작에 라이터니 모텔 요금표니 하는 것들이 쓰나미에 휩쓸렸다.
『에잇. 이놈의 열쇠가, 열쇠가...』
마음이 급하니 되는 일이 없다. 땅 파는 너구리처럼 더미를 헤쳤음에도 열쇠가 쨘 하고 등장하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어.
나는 눈을 뒤집었다. 아까도 말했잖아. 필요해서 찾으면 안 나온다고 했지? 버스를 기다리면 버스가 오지 않고, 우산을 준비하지 않으면 비가 내리고, 맨날 싱크대 위를 굴러다니던 더러운 양말도 찾으면 없...
우뚝 멈추고 선 형이 위협적으로 눈을 부릅떴다.
『그놈의 양말 타령은 그만하라고 그랬지. 주먹으로 맞고 싶어 환장한 거냐, 새미?』
『아니. 깔리고 싶어 환장했어.』
만사 체념한 투로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구부정한 노인네 걸음걸이로 침대로 돌아갔다.

『까... 깔려?』
고추 껍질 벗겨진 날부터 되바라지게 놀아댄 주제에 흠칫 놀라 되묻긴.
대꾸할 기운도 없어 열에 들뜬 눈으로 묵묵히 형을 쳐다보았다.
『그래. 깔리고 싶어 환장했다.』
어이가 없으려니까.
닳고 닳은 인간이 겁에 질린 순진한 촌색시처럼 목을 움추렸다.

『아, 아, 아무튼 야, 약을 사러 갔다 올테니 이불, 이불 뒤집어 쓰고 야, 얌전히 있어!』
『예이, 예이.』
『야, 얌전히 있을 거지?!』
『접시 깨고, 도끼로 TV 부수고, 옆방으로 총알 갈기고, 이불에다 오줌 쌀게. 됐지?』
퉁명스럽게 쏘아붙이자 그제야 단단하게 굳은 표정이 누그러졌다.
『그려. 지붕만 무너뜨리지 마.』
이어 서둘러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Posted by 미야

2009/08/27 13:47 2009/08/2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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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J 2009/08/27 14:24 # M/D Reply Permalink

    억억억-무려 연달아 올려주셨다+ㅁ+
    점심 먹고 잠오던 차에 한 번 더-읽을 양으로 왔는데 이 무슨 횡잽니까!
    억, 너무 좋아요........
    까, 깔리고 싶다니, 새미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딘은 왜 이 기회를 뻥 차고 달아나는 건가요? 촌색시 마냥 얼굴 붉어진 딘이라니....전, 이런 횽아가 느무 좋아요....어허허허허-
    미야님, 애,,,,애정합니다!
    억, 너무 좋아...ㅠㅡㅠ

  2. 나마리에 2009/08/28 17:44 # M/D Reply Permalink

    우앙. 맨날 굴러다니던 양말도 찾으면 없고.. ㅋㅋㅋㅋ
    샘 귀여워요. 그 놈의 양말. ㅠㅠ
    딘 형님.... 동생한테 일단 약은 먹이시고 그리고 다음 스텝 가는 거지요? 그렇지요? 넵? ㅎㅎㅎ

비뚫어질테다

엄하고 냉정하게 키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내 주장에 바비 아저씨는 특유의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리곤 한다.
『물고구마다, 물고구마. 네가 네 동생을 대하는 태도라는 건 더도 말고 딱 그거다.』
과연 그런가. 내가 그렇게 물러터졌나.
여차하면 주먹을 눈앞에 대고 흔들며「대세는 형님 사랑~!」을 외쳤던 나는 잠시 헷갈렸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샘을 대하는 나의 자세라는 건 물고구마를 닮았음을 부정할 길이 없다.

『으음, 으음.』
양말을 감췄더니 저놈의 고자 자식은 이제 내 엄지발가락을 추룹추룹 소리를 내며 빨기 시작했다.
절대로 안 된다며 수십 차례 발길질을 퍼부었지만 괜한 짓거리다. 내 동생의 똥고집이라는 건 발길질 정도로는 꺾을 수 없다는게 기정 사실로, 최소한 핵폭탄이라도 투하해야 일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얼굴색을 바꾸고 고함을 질러봤자 돌아오는 대답은「닥치고 발 내놔」...

『이 변태야. 넌 지금 나한테 약점 잡혔어. 얼레리꼴레리. 죽을 때까지 골려줄테다. 어디 그뿐이야? 동네방네 소문낼테야. 발꼬락 변태, 발꼬락 변태, 창피해서 어쩌나. 얼레리꼴레리. 앞으로 얼굴도 못 들고 다닐...』
『조용히 해. 집중을 못 하겠잖아.』
순간 충격으로 숨이 턱 막혔다.
하늘 같은 형에게 조용히 하라 윽박지르는 건 그렇다치고 이 마당에 집중을 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그래서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농담이지요? 그죠?』
대답 대신 샘의 콧구멍이 눈에 띄게 벌릉거렸다. 설마... 흥분하신 겁니까.

크아, 진짜지 모르겠다. 이 귀신은 누군지.
누워있는게 여자고, 게다가 매우 아름다운 여자고, 샘이 그 미녀의 발을 정성을 다해 핥고 있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반발하진 않을 거야. 물론... 킁. 심리적으로 부담스럽기는 해. 기왕 하려면 슴가를 만져야지. 안 그려? 슴가가 최고야. 슴가. 그런데 이게 뭐냐고. 그림이 영 아니잖아. 티눈도 있고, 굳은살도 박혔고, 허물도 벗겨지는 남정네 발에 탐닉해서 뭐에 써 먹어. 안 돼, 안 돼.

기가 차고 숨이 막혀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그 몸부림이라는 것도 탈진해서 기력을 잃은 금붕어가 입을 뻐끔거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서 억지로 발을 뺐다간 엄지발가락을 꽉 물고 있는 샘의 이가 부러진다.
그렇기에 싫다고 반항하는 내 동작은 아무래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고, 바비의 표현대로 물러터진 물고구마 어쩌고였다.
『아~ 씨이~!!』
형님의 위엄을 잃은 지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울상만 지을 뿐.

Posted by 미야

2009/08/26 13:08 2009/08/26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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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렌드 2009/08/26 15:42 # M/D Reply Permalink

    이거이거...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오는 건가효....

  2. T&J 2009/08/27 08:31 # M/D Reply Permalink

    우어-생각도 못한 횡재+ㅁ+
    이리 빨리 오실줄이야~!ㅋㅋㅋㅋㅋㅋㅋ
    윽, 새미......귀엽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좀 엽기긴 하지만....그래요, 형님 발은 물집도 잡혔을거고, 굳은살도 박혔을거고....벗겨지기도 하겠죠...냄새도 무시못할 거라 생각되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형님, 그러지 말고 비누칠해서 빡빡 씻어보는 건 어떠시우?-라고 말해주고 싶네요...ㅋㅋㅋㅋㅋㅋ
    근데, 그와중에도 동상 이 다칠까 싶어 발을 빼지 못하는 형님이라...젠장, 너무.......좋다.....ㅠㅡㅠ...물고구마 횽님, 표현 좋아요-딱이야, 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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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은 언제오나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평생 못 고칠 거라 생각하고 단념했던 형의 버릇 - 싱크대 위로 굴러다니는 더러운 양말 - 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얘들아, 문가에 소금 뿌렸냐 잔소리를 했어도 아빠는 평생 구역질나는 양말에 대해선 이렇다 꾸지람을 하지 않았다. 문제의 장남은 누렇게 찌든 자기 팬티를 어디다 벗어 던졌는지 기억을 못해도 총기구 청소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했다. 결국 이것저것 저울질을 하던 아빠는 딘에게 훈계를 하지 않았고, 대신 인상을 엄청나게 써가며 더러운 양말을 집게손가락으로 집어올려 쓰레기통으로 골인시켰다. 그리고 폭탄 맞은 꼬락서니의 침대에 앉아「사내 자식들이 다 그렇지, 뭐」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된다.
세상의 모든 사내 자식들이 협탁 아래로 햄버거 포장지를 굴리지 않는다.
난 그런 적 없다.
『그려요. 누구 동생인지 정말 잘 났어요.』
구린내 나는 자기 침대에서 도망쳐 깨끗한 동생의 침대로 피난가지도 않는다.
『쓸쓸하니까 같이 자자 징징거린 건 어디에 사는 누구냐! 부활한 엘비스냐?!』
진흙물이 든 셔츠를 흰색 빨래와 섞어 세탁기에 돌리는 무신경함.
『바빠 죽겠는데 그걸 분리하고 앉았냐. 한 번에 돌리고 말지.』
내 양말은 내 양말이오, 네 양말도 내 양말이라는 용서할 수 없는 논리.
『마트에서 왕창 세일하는 똑같은 색깔에 똑같은 크기, 똑같은 디자인인데 어떻게 구분이 가니.』

말대답을 꼬박꼬박 잊지 않는 형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소파에 널부러진 채 스무 번 더하기 일곱 번째로 맨인블랙 2탄을 감상하던 딘은 지지 않고「덤벼, 판초!」이러며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악당으로 나오는 여자 외계인의 결코 지구인 답지 않은 커다란 젖통을 곁눈질하는 바람에 위풍당당한 기세가 한 풀 꺾였다는 문제가 좀 있었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반항하는 동생은 형님에게 맞는다」를 의미하는 주먹은 허공에서 보란 듯이 흔들렸다.

『셀리나 나왔다.』
『앗흥.』
딘은 반사적으로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렸고, 기회는 이때다 형의 몸을 뒤로 훌쩍 떠밀었다.
벌렁 쓰러진 병사가 악에 받쳐 외치는 소리.
반칙이다, 반칙이다. 불시 습격은 반칙이다.
『그럼 형은 바야바랑 붙을 적에도「앞으로 1분 30초 뒤에 산탄총을 발사할테니 각오하여 주시면 참 감사하겠습니다」이러고 미리 예고하고 방아쇠를 당기우?』
『미친나. 물론 그러지 않지. 하지만 나는 바야바가 아니거든.』
『아, 그러셨나요. 미처 몰랐습니다요. 그러고보니 바야바가 감자튀김을 입에 달고 소파에 늘어져 있을 것 같진 않군.』
덧붙여 형의 배를 장난스럽게 조물거렸다.
『그리고 바야바는 이렇게 뱃살이 나오지도 않았을 거야.』

딘은 펄펄 뛰었다.
『근육이다 근육!』
『군살이다, 군살.』
『근육근육근육!』
『군살군살군살!』
『아, 씨이! 정 못 믿겠음 눌러보란 말이야! 이렇게 단단한 군살 봤어?!』

눌러보라고?
사악하게 씨익 웃으며 엄지손가락으로 젖꼭지를 꾸욱 눌러봤다. 그리고 너스레를 떨었다.
『오오~ 진짜다. 정말 단단하네.』
형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Posted by 미야

2009/08/24 12:59 2009/08/2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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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비 2009/08/24 21:26 # M/D Reply Permalink

    앗흥. ㅋㅋㅋ 그 몇년 떨어져 어찌 살았누- 싶네요.
    다 큰 사내 둘이서 이러고 노는건 반칙! 반칙! >_<//

  2. T&J 2009/08/25 10:23 # M/D Reply Permalink

    억, 기다리던 포스팅이군요...
    미야님 소설에서 대화를 보면 말입니다, 딱 윈체스터들 같아서 더 좋은 것 같아요...ㅡㅠㅡ...깔끔한 지문도 좋고.........한마디로 전 미야님 덕후.....;;;깔끔한 문체 부럽습니다요, ..컥컥
    암튼.........미야님의 윈체스터들은.....억, 귀여운 자식들....둥기둥기 막 해주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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