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만화 원작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폐가 아팠다.
숨을 참은 채 무리하게 전력질주를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엎어진 자세에서 등을 밟혀 그런 건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아마도 후자 탓이 더 크지 않을까 싶었지만... 3학년 선배가 더 힘을 주어 밟은 탓에 생각의 흐름마저 끊겼다. 벌레처럼 밟혔다는 굴욕감 이전에 제대로 숨을 쉬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눈앞이 하얗게, 검게, 다시 하얗게 변했다. 사진기의 플래시 라이트가 정면에서 터진 것 같았다.
퍽, 하는 소리와 같이해서 등가죽이 타들어갔다. 이번엔 걷어찬 거다.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 같으니. 누구냐. 누가 1학년의 콧쿠리님이냐고.』
하시모토의 바람과는 다르게 이시즈미와 스가와라는 멀리 도망가지 못했다.
저 혼자 살겠다며 도망치는 짓은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대항할 용기나 의지 따윈 아무리 끌어 모아봤자 티끌이어서 등을 밟힌 채 쓰러진 하시모토를 도와줄 수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거다.
3학년은 덜덜 떨고 있는 이시즈미를 눈여겨 본 뒤에, 다시 말문이 막힌 것처럼 보이는 스가와라를 쳐다봤다.
『그래서 누가 콧쿠리님이냐고.』

대답은 반장이 했다.
『제가 1학년의 콧쿠리님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선배님.』
숨을 헐떡이며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콧쿠리님을 다치게 하면 앙화가 내립니다.』
그 즉시 3학년의 안색이 바뀌었다. 짜증이 분노로 바뀌었다.
『시끄럽다, 1학년. 나는 안 모시는 쪽이라고!』

누구는 콧쿠리님이 비가 오는 날에 해가 날 것을 기대하며 처마 아래 걸어두는 테루테루보즈 인형과 똑같은 거라고 했다.
그런가보다 싶었다. 그는 이 미신 같은 짓거리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쪽이었다.
어쩌다 매점에서 마주쳤던 3학년의 콧쿠리님은 보통 체격에 평범한 인상이어서 섞어놓으면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오죽하면 등에다 파란 점을 찍어야 한다는 말이 나왔을까. 자꾸 실수로 말을 걸게 된다면서 같은 학급 아이들이 불평했다.
표정이 어두웠던 것만 기억났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interrupt, schedule, restaint, 어쩌고 하면서 영어 단어를 중얼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친구 말에 따르면 공부는 그럭저럭 하는 편이었다고 했다.
「올해는 잘못 뽑은 거 같아.」
「괜찮아. 그냥 이대로 별 일 없으면 되는 거야. 재작년의 악몽 같은 상황만 안 벌어지면 돼. 이번 콧쿠리님은 옥상에 올라가 다 죽어버려 고함칠 성격은 아니니까 그걸로 된 거야.」
「아, 몰라. 솔직히 내가 콧쿠리님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밖엔 안 들어.」
「대신 숙제가 없잖아. 선생님들께 말만 하면 답안지도 보여 준다더라.」
「그건 헛소문.」
「숙제만 없어도 어디냐. 수학 숙제 너무 많아 힘들어.」
「차라리 과제에 치어 죽지. 그냥 왕따잖아. 나 같으면 집어 치우고 전학 갈 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3학년의 콧쿠리님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듣자하니 가게도 팔고 아예 가족 전부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버렸다고 했다.

『또 콧쿠리님 모시기를 했다고 들었다.』
이후로 체육 교사 히무라는 돌았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을 수준으로 기합 넣기 체조를 시켰다.
땀을 뻘뻘 흘리며 따라 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그럴 거야. 저주 따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건 인간의 나약한 마음으로부터 생겨나는 거다. 그러니 너희들의 나약함을 체력으로 바로 세워라. 기합을 넣어서 하나! 기합을 넣어서 둘!』
원래부터 귀신같은 건 믿지 않던 입장에선 히무라 선생님의 비난은 억울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전학을 간 콧쿠리님의 스케치북이 치워지지 않고 미술실에 남았다는 얘기가 소문처럼 돌았다.
수채화물감으로 까맣게 붓질을 한, 사진을 베껴 그린 풍경화라고 했다.
「본인도 까먹고 갔는데 그냥 버리면 되지.」
그가 그 말을 꺼냈을 때 친구의 표정이 굉장했다. 일단 땀을 엄청 흘렸다. 그리고 담임으로부터 부모님을 모셔 오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굳었다.
「그런 말 하지 마. 그걸 어떻게 치워.」
「왜 못 치워?」
「아, 그랬지... 너는 안 모시는 쪽이지. 속 편한 놈. 것보다 올해 겨울에 닌텐도 DS가 나올 거래.」
콧쿠리님은 서로에게 불편한 화제였기에 친구는 서둘러 말을 바꿨다.

그림은 계속해서 치워지지 않았다.
미술부 활동을 하다 잠시 자리를 떠나기라도 한 것처럼 스케치북은 자연스럽게 펼쳐진 채로 방치되었다.
어째서인지 금방이라도 그림의 주인이 자리로 돌아와 붓으로 칠을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물통과 물감, 붓 같은 도구들이 정리가 되지 않았고, 검게 칠해진 그림은 아직 미완성이었다.
스케치북을 슬쩍 들었다가 도로 제자리에 놓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치울 수 없다는 뜻이 무엇인지 그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징그러워.」
꺼림칙한 손을 5분 내내 비누칠을 하며 씻으며 다시는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다짐했다.
외면하면 남의 일이다. 그는 모시지 않는 쪽이었다.

『쟤가 콧쿠리님이에요!』
그때 이시즈미 루미가 스가와라 미즈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자질을 했다.
『다른 애들에게 물어보시라고요! 진짜에요. 쟤가 콧쿠리님이에요!』
선배들이 스가와라를 데리고 가서 무슨 짓을 저지르든 말든 이시즈미는 아무 상관없었다. 친하게 지낸 것도 아니고 같은 동네에 살고 있지도 않았다. 나자렛 예수를 팔아 은 30냥을 받았는데 콧쿠리님을 팔아 친구를 구하는 건 왜 안 되는가.

그런데 선배는 하시모토 리코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3학년 무리들 쪽으로 돌아가려 했다.
『리코는 아니에요!! 진짜에요.』
싹싹 빌어도 3학년은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말리려고 하는 이시즈미의 입 부분을 주먹으로 치기까지 했다.
치아가 부러진 것 같은 느낌에 턱 부분을 감싸 쥐고 소리도 못 냈다. 그저 눈물만 줄줄 흘렀다.

화가 난 3학년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한 나카소네 키요타카는 5층으로 끌려갔다.
체육복을 입은 애가 1학년의 콧쿠리님이다, 1학년 2반이 아닌 척해서 죄송하다, 반복하여 용서를 구했지만 선배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대체 뭘 원하는 건데. 그저 분풀이가 하고 싶었던 건가. 눈알을 굴려 눈치를 보다가 시선을 느낀 선배가 흰자위가 보이도록 희번덕 노려보자 그 짓도 관뒀다. 지금은 그냥 무조건 빌어야 할 때였다.
『얘 진짜 웃기네. 네가 뭘 잘못했는데?』
『글쎄요.』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용서를 구하는 거니?』
『가르쳐주시면 사과할게요, 선배님.』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애를 썼다. 통증 탓에 기괴한 웃음이 되어버렸지만 거울이 없으니 알 길이 없었다.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울상으로 바뀌었다.
웃음은 여유가 있을 적에나 나오는 거다, 그 말을 누가 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담임이었다. 「웃음은 여유가 있을 적에나 나오는 거다. 성적이 좋아야만 성적표를 보며 웃을 수 있는 거다. 너는 웃을 자격이 없다.」 배불뚝이가 볼펜으로 머리를 툭툭 치며 했던 말이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다고요!』
카제야마 중학교는 원래 5층 건물이었다. 과거형으로 말해야 한다는 점이 아찔하지만, 5층 건물이었다.
5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일단 초록색으로 빛나던 비상구 표지판이 사라지고 표지판으로 바뀌었는데 적힌 내용은 층수를 나타내는 숫자가 아니고 유계(幽界)라는 글자였다.
이쪽이 현계이면 저 아래는 저승이라는 의미인지 5층과 6층의 경계선엔 까드득 뿌르륵 소리를 내는 이상한 것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위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상한 것들이라는 것 말고는 다른 표현이 불가능했다. 눈알은 개구리처럼 컸고, 피부는 양서류처럼 반질반질하면서 색이 파랬다. 덩치는 사람 크기인데 다리와 팔은 빗자루처럼 가늘었다. 그런 게 한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까드득 뿌르륵 요상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던져버려.』
『이러지 마세요! 아아악!』
떠밀려지자 아래에서 서성이던 것들이 저마다 난리가 났다.
나카소네는 울부짖었다. 팔을 뻗어봤지만 잡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개구리처럼 생긴 괴물이 빠르게 저를 삼켰고, 보고 있는 선배들은 하나같이 무심했다.

붙잡혀 온 하시모토 리코가 그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카소네가 눈앞에서 통째로 잡아 먹혔다.
『무슨 짓을...』
『어쩌겠어. 삼킨 놈은 사라지거든. 봐,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지? 애들 일곱을 삼키고 괴물 일곱이 없어졌어. 이제 하나 더 사라졌고.』
선배들은 남은 괴물의 머리 숫자를 헤아리다 이제 열 하나가 남았다며 별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그리고는 반항하다 벗겨져버린 나카소네의 한쪽 실내화를 무슨 쓰레기 치우듯 아래를 향해 마저 던져버렸다.


※ 게토 스구루, 여덟 명 구조 완료.

Posted by 미야

2021/04/28 14:38 2021/04/2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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