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팬픽입니다.
2038년 11월 13일 밤부터 15일 새벽까지의 이야기이며, 마커스 평화루트, 코너 불량품 루트, 카라 보트 탈출 루트를 베이스로 하고 있습니다. (루터, 카라 사망)
작중 주인공들은 원작게임에 등장하지 않는 창작 인물입니다. 편애가 극심한 관계로 츤츤 행크가 주요 서브인물로 등장합니다. 원작 게임의 줄거리를 모른다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어지간한 건 즉흥적으로 지어냅니다.


살아있는 존재는 반드시 죽는다.
우주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죽어있는 것으로,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생명은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비정상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아들의 죽음과 같이하여 가지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고 어두운 왜소행성이 되어버린 행크 앤더슨 경위는 삶에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게 되어버렸다.
우주적 관점에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충동이 매일 닥쳤다.
규정에 의거하여 정기적으로 경찰관의 심리 상담을 진행하던 의사는 그에게 중증 우울증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에밀리 퍼슨이라는 이름의 이 심리 상담가는 약물처방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면서 긍정적인 내용을 적은 쪽지를 화장실 거울에 붙여놓고 아침마다 읽어보라는 조언을 남겼다. 예를 들자면 「수염을 잘라볼까」, 「비타민을 챙겨먹자」, 「스모를 산책시키기」 같은 것들을 말이다.
퍼슨은 예전 방식으로 클립보드에 설문지를 끼워두고 각 항목에 펜으로 V표를 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었다.
「조언대로 반드시 따라하세요, 경위님. 거울에 쪽지를 붙이고 사진을 찍어 저에게 보내주시면 점수를 드리죠.」
점수를 준다는데 어쩌겠는가. 앤더슨은 그녀의 말대로 했다.
효과는 없었다. 그래서 개원은 꿈도 못 꾸고 시에서 예산이나 받아먹는 엉터리 심리 상담가라고 비아냥거렸다.
차라리 잠들기 전에 위스키를 마시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었다.
알코올이 체내로 깊숙이 들어오면 약실에 총알 한 방을 장전하고 매그넘 방아쇠를 당겨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분노가 가라앉고 체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런데 참 사람 일이라는 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술에 취해 러시안 룰렛을 하던 사내가 막상 죽음이 코앞으로 닥치자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며 발악하고 있으니 말이다.

두 번째 드론이 미사일처럼 날아가 자동운행 택시를 가격했다.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펑 하고 불꽃을 내며 터지는 일은 없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묘사된 특수효과가 생략되자 대신 그 자리에 남은 건 중량과 속도, 그리고 에너지였다.
견고함과 제작비 그 어딘가에서 타협하고 실용적으로 제작된 드론은 갈가리 찢겨져 사방에 쓰레기를 뿌려댔고, 두 번에 걸친 물리적 공격을 얻어맞은 택시도 움직임을 멈췄다.
연기, 먼지, 이런 건 없었고 그냥 조명이 꺼졌다.
「저희 디트로이트 택시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고 다음에도 고객님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녹음된 안내멘트가 흘러나오면서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뒷좌석 문이 벌컥 열렸다.

『평소 무슨 일을 해야 택시가 원한을 품게 되는 겁니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제임스는 손바닥을 입에 대고 붉은색의 이물질을 뱉어냈다. 목안으로 넘어갔던 코피가 침과 섞여 응고된 덩어리들이었다. 뱉어낸 피를 보고 잠시나마 제임스는 할 말을 잊은 듯했다.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투로 더러워진 손바닥을 길 위에 쌓인 눈에 대고 닦았다.

기절했던 놈이 정신을 차렸으니 기뻐야 마땅한데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원한이라니.』
『이용요금을 내지 않고 도주했다거나.』
『내 직업이 경찰인데?』
『술 먹고 시트에 토사물을 가득 뿌려놨다거나.』
『멀쩡한 내 차를 두고 택시 이용을 왜 하는데.』
『그럼 음주운전을 한단 말예요?』
사고를 낸 적은 없거든 – 구차한 변명을 입에 담으려던 경위는 주먹을 꾹 쥐었다.
참자. 애초에 무인 택시가 인간에게 화를 낸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설령 택시요금 몇 푼 떼어먹고 도주했다고 쳐도 무임승차로 고발을 당하면 당하지 쇳덩이 주제에 승객을 죽이겠다며 덤벼들겠느냔 말이다.
상대는 정상이 아니다. 그리고 다치기까지 했다. 그러니 화내지 말자.

『128 더하기 41은?』
『169.』
『오케이. 계산은 아주 잘 하네. 토할 것 같음 얘기해라.』
겨드랑이 안으로 팔을 넣어 부축하고 일어났다. 뭔가 다른 게 또 날아오기 전에 자리에서 벗어나는 게 순서였다.
『아니면 걷어찬 적이 있는 거예요.』
『뭘 걷어차.』
『택시를.』
그냥 놓고 갈까 3초 고민했다.
『괜찮아요, 경위님. 이해합니다. 저도 기분이 나쁜 날에는 문을 쾅쾅 닫아요.』
『택시 문을?』
『아뇨. 어... 화장실 문을. 그러니까...』
거기까지 말한 제임스가 입을 다물고 우거지상을 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뼈가 부러지지 않았을 뿐이지 무지하게 아픈 거다.

『앞으로는 사람 구하겠다고 막 덤비지 마. 사람 구하기 전에 네가 죽는다.』
예, 아니오, 돌아오는 대꾸가 없었다. 제임스는 새하얗게 질려 뇌로 전달되는 부정적인 신호를 어떻게든 참아보려 했다. 하지만 통증이라는 것이 무작정 참는다고 참아지던 종류던가. 다시 그의 얼굴색이 파랗게 변해갔다.

잠깐 멈춰달라고 제임스가 입모양으로 말했다.
일절 무시하고 제일 가까운 빌딩 출입구 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돌연 천지분간 못 하고 사이렌이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앤더슨 경위는 M****** F***** 심한 욕을 중얼거렸다.
종말이냐? 종말이라도 왔냐고. 대통령이 핵미사일 버튼이라도 눌렀냐고.
아침이 밝았고, 도시는 통째로 미쳤고, 하늘에서는 재처럼 보이는 눈발이 다시 날리는 중이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건조한 11월의 공기에선 오래된 이불에서 올라오는 먼지 비슷한 냄새가 맡아졌다. 지옥 불 악취는커녕, 제기랄... 그랬다. 언제나의 아침 냄새가 났다.

사이렌 소리가 더 커졌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호주머니 안쪽에서도 난리가 났다.
밤새 신호가 잡히지 않던 휴대폰이 메시지를 수신하고 지랄 염병을 떨어대고 있었다.

RUN RUN LIEUTENANT

화면을 켜자 보낸 사람이 □□□□ 로 표기되는 의문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화면을 툭툭 치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참았다. 이게 다 장난은 아닐 거고.
순간 좋지 않은 예감과 같이하여 뒷골이 오싹해졌다.
지잉 소리와 함께 보안 카메라가 보는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안 좋은 조짐이라는 건 굳이 직업이 경찰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었다. 황급히 제임스를 부축한 경위는 중심을 잘 잡지 못하는 그를 끌고 건물 출입구 계단을 뛰어서 올라갔다.
생각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성적인 판단을... 아, 그런데 진짜 저놈의 망할 사이렌 소리는 언제 그치는 거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제임스의 앤더슨 경위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알아! 안다고!』
좇 됐다. 그 표현밖에는 쓸 말이 없다.
발작하듯 몸을 떨어대는 안드로이드 몇이 흰자를 드러낸 채 가까이 다가오는 중이다. 경련을 일으키는 주제에 다가오는 속도는 무지 빨랐다. 흡사 좀비 떼의 느낌이다. 약간의 분장만 하면 더도 말고 좀비였다.

Posted by 미야

2020/08/28 13:51 2020/08/2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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